제2부. ‘5공 청산’과 전두환 노태우 갈등
」4회. 노태우 ‘같이 죽고 같이 살아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왼쪽 둘째)은 자신을 극진히 모시는 절친 이원조 의원(오른쪽 끝)과 골프 치길 좋아했다. 왼쪽 끝은 권익현 의원, 오른쪽 둘째는 이만섭 의원. 이날은 노 대통령이 6공 초 ‘5공 청산’ 차원에서 공천 탈락시켰던 친구 권익현을 1992년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 복귀시켜준 다음 축하해 주는 모임이다. 중앙포토
1988년 11월 14일 전두환 전직 대통령이 노태우 현직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돌파구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이원조였다. 이원조 의원만의 개인적 성격과 오랜 연분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이원조는 ‘노태우와 포커판 고정 멤버’다. 경북고등학교 동창으로 어려서부터 친구였으며, 은행에 다니던 젊은 시절부터 노태우와 김복동 등 군인 친구들과 포커판을 자주 벌였다.
이원조는 노태우보다 더 조용하고 섬세했다. 그래서 노태우는 이원조와 함께 있길 좋아했다. 포커만이 아니었다. 이원조는 골프를 아주 잘 치는데, 노태우의 당일 컨디션에 맞춰 점수를 조절하며 쳤다. 노래를 좋아하는 노태우와의 술자리에서도 이원조는 늘 분위기를 북돋아주었다.
노태우 입장에서 이원조의 가장 큰 장점은 우정을 뛰어넘는 충성심, 그리고 그 충성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말과 현실로 옮기는 행동이다. 6공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을 모시고 이원조 의원과 같이 약 1시간 저녁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이 의원이 ‘최고의 현군이시며 역사에 이름을 높이 남길 각하’라고 말하는 것을 세 번이나 들었다”고 말했다.
이원조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도 가까웠다. 5공 출범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부터 참여했고,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석유개발공사 사장과 은행감독원장을 지내며 정치자금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11월 2일 전두환을 찾아가 ‘낙향’을 권유하다가 ‘다신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불호령에 쫓겨났다. 그런 이원조가 11월 15일 아침부터 연락을 해왔다. 전날 밤 전두환이 노태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나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메신저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달라”며 면담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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